Copyright Tongyeong Triennale
나의 작업은 ‘제스퍼 존스’가 이야기 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 에 집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개인적 취향에서 출발한 사적인 수집물들은 (화려한 색감, 매끄러운 표면, 빛나는 것, 소비되기 위해서 공장에서 생산된 것, 크기가 작은 것, 달콤하면서 가벼운 일상적인 것, 등의)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킨다. 까마귀가 반짝거리는 사물들을 습관적으로 물어다 모으듯, 내가 수집한 각각의사물들은 구체적이지 않은 모종의 연계성을 지니게 되고, 이러한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는 혼합된 사물들의 모임에서 조악하고 엉뚱한미감을 발견하고, 그 모습 속에 투영된 개인적 욕구와 사회적 현상에 주목한다.
장난감과 사탕, 가짜보석은 한 화면 안에서 서로간의 우열관계가 아니라 물질적이고 표면적인 공통점을 통해 연계성을 가진다. 화면에등장하는 장난감, 큐빅, 사탕 들은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내재되어있는 경험, 또는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특정한 욕망의 상징물이며, 또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욕구를 담보로 하는 ‘상품들’임에 동시에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부산물 이다.
인간의 소비 행위는 1. 욕구의 발생- 2. 상품으로의 변용- 3. 상품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매력적인 상품들, 넘쳐나는 상품들은 이 사회가 무한한 쾌락을 허용하고 선사해 주는 것처럼 보이나, 넘쳐나는 상품들을 통해서도 인간은 모든 욕구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상품들을 끝없이 만들어 낸다. 주체가 되어야 할 인간의 모습은 수많은 상품들의 홍수 저편, 뒤로 밀려있는 듯하다. 장난감 인형의 웃고 있는 표정은
해학적이며, 유머러스하지만, 비록 웃고 있으나 분해되어진 인형의 표정에서 블랙코미디(Black comedy)의 요소를 갖고 있다.
어린이가 인격을 형성하는 시기에 가장 먼저 접하는 대상 중 하나가 바로 장난감일 것 이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인형들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인격적인 대리물, 알터-에고(alter-ego)의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인형을 재우거나 다른 인형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행위들을 통해 자신들의 위치가 지닌 나약함에 대한 불안감을 보상받는다. 플라톤이 추구하고자 하였던, 가장 완벽한 상태인 ‘이데아’처럼 화면 안에 펼쳐진 상황과 이미지는 마치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당시의 환상적인 상상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군더더기 없이딱 맞아 떨어지는 완벽한 세계의 미감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작품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면서 때가 묻고 변질되어 곰팡내가 나는 불완전하고 불안한 상태의 마음이나 현실에서의 도피처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란다.
1983년 출생
10 rue des jardins, 57000 Metz, France
Wednesday-Saturday 11.00am-6.00pm
+33 3 87 68 52 40